정석우의 작품은 여러 면에서 작가와 대조적이다. 그림은 매우 크지만 작가는 체구가 작다. 선명하고 강한 색채, 날카로운 선과 형태로 가득 찬 그의 화면은 사랑에 빠진 심장처럼 고동치며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시선은 내성적이고 음성은 조용하다. 여러 개를 잇댄 커다란 캔버스들을 종횡무진한 작업의 흔적은 상당히 우발적인 신체적 행위의 결과 같다. 그러나 보기와 달리, 작업의 출발점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가에게 깃든 이미지들이며 그의 작업은 주로 그 이미지들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정석우는 말한다. 나는 구상화가, 이미지를 만드는 화가라고.

이미지는 나의 닻

이미지의 원천은 다양하다. 그것은 자주 꾸는 꿈이기도 하고, 낯선 제3세계 영화이기도 하고, 미술사의 유명한 고전들(혹은 그 키치)이기도 하고, 또는 이국의 종교를 소개하는 책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천이 무엇이든 정석우의 작업은 그를 사로잡은 무엇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내면의 반응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주관주의), 또 개별적․문화적 존재들의 저 먼 바탕에 있을 법한 모종의 근원과 에너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원시주의),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인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점에서(비합리주의), 명백하게 표현주의의 틀 안에 있다. 비록 작가는 안셀름 키퍼를 좋아하고, 자신의 작업을 신표현주의와 연관시키지만, 신표현주의 자체가 표현주의로의 끈덕진 복귀이므로 작가와 표현주의를 직접 연관짓는다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문제는 표현주의다.

표현주의의 문제

잘 알려져 있듯이, 표현주의는 현대의 특정 시점, 자본주의의 합리화가 국가간 분쟁으로까지 격화되던 20세기 초 독일에서 나타난 미술운동이다. 다리파, 청기사파를 핵심그룹으로 했던 독일 표현주의는 20세기 초 20년간 급속하게 진행된 독일의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 반응은 현대 도시를 일종의 카오스로 간주하면서 ‘내면의 불안’과 ‘정신적 공포’를 심화(키르히너)시키는 표현이거나, 도시의 산업 문명이 야기한 인간의 소외를 근원적 자연과의 결합(마르크)을 통해 혹은 영적인 세계와의 교감(칸딘스키)을 통해 극복하려는 표현이었다.

이러한 표현주의의 역사적 의의는 분명하다. 먼저, 20세기 초 독일에서 등장한 표현주의는 현대화의 틈바구니에서 단자로 고립되고 파편으로 소외된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시점의 객관적 표명이다. 나아가 비사실적 색채나 왜곡된 원근법을 통해 또는 영적인/감정적인 효과를 지향한 형태나 색채를 통해 이루어진 표현은 아카데미의 모방적 재현 관례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당대의 여러 현대적 도전들과 마찬가지로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표현주의의 역사적 한계 또한 분명하다. 내면의 불안과 공포에 몰두했든 자연이나 영혼과 교감을 추구했든 표현주의가 채택한 주관주의, 원시주의, 비합리주의는 미술의 기존 관례에는 파괴적 위협이 됐을지 몰라도, 객관적 세계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주관적 내면, 현대적 문명이 아니라 원시적 자연, 합리적 이성의 세계가 아니라 비합리적 신화/종교의 세계를 탐닉하는 것은 잘해봐야 낭만적 퇴행, 더 나쁘게는 퇴폐적 공모가 되어 현상유지에 기여할 뿐일 수도 있다. 이 혹독한 평가는 표현주의에 대한 사회적 미술사의 해석이고, 이 해석은 2차대전 직후 서유럽과 미국에서 그리고 1980년대 독일에서 재기한 여러 형태의 표현주의(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신표현주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미술사의 전제를 유보 없이 받아들일 때만. 미술의 목적은 현실의 변혁이라는 전제, 좀 누그러뜨리면 현실의 변화에 기여/관여하지 않는 미술은 비역사적이라는 전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표현의 희망 혹은 가능성

미술가도 사회인이다. 미술가 역시 특정 시대 특정 공간을 살아가기에 그에게도 역사는 장신구가 아니다. 그러나 현대라는 분화된 시대 속에서는 역사 또한 분화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술가에게 일차적인 역사는 미술의 역사다. 그리고 물론 미술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와 공존한다. 공존의 방식은 문제적이다. 대립이거나 공모이거나 아니면 양자의 조합이거나. 어떤 방식이든, 가장 소망스러운 것은 미술가가 자신을 기입하고자 하는 미술의 역사와 사회의 역사가 만나는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변혁을 외재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모방적 재현의 고전주의 전통을 무너뜨린 모더니즘이나 순수한 예술의 모더니즘 전통을 무너뜨린 아방가르드와 같이, 무너뜨릴 무언가가 굳건하고 명확했던 현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동시대 미술의 현장에서 가능한 변혁은 내재적이다. 훨씬 어렵다. 너무 많은 변혁이 이미 일어나버린 데다 그 많은 변혁이 제도와 시장으로 흡수되어버려, 우울한 패배주의를 부추기기 일쑤인 것이다.

이러한 동시대의 장면에서 표현으로 할 수 있는 변혁은 무엇일까? 표현의 언어화라는 문제는 어떨까? 정석우가 그리는 이미지는 그에게 아주 생생하게 보였거나 느껴진 이미지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발전시킨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작가는 물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그저 개인적인 것이어서 일방적인 이야기에 불과하고 그런 그림은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걱정한다. 참으로 정당한 걱정이고 주목할 만한 걱정이다. 이전의 어떤 표현주의에서도 심각하게 다루어진 바 없던 걱정이기 때문이다.

표현주의는 표현의 기원을 자아에 두고, 그 자아가 직접, 그 어떤 매개도 없이 표현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표현주의에서는 언어의 지위와 소통의 가능성이 부정된다. 만일 표현주의도 언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사적인 언어다. 그리고 알다시피, 사적인 언어는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 따라서 언어가 아닌 것이다. 표현주의의 이러한 문제는 의미의 기원을 자아로 삼았던 추상표현주의를 미니멀리즘이 사적 언어의 불가능성을 제기하며 비판함으로써 밝혀졌다. 이후 신표현주의가 등장했으나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신표현주의는 자아와 직접성에 기댄 표현주의 미학을 극복하기는커녕 답습 혹은 재활용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실마리를 줄지도 모른다.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은 말을 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같은 말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말로 같은 종류의 내적 경험을 가리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마침내 그 경험은 공유가 될 수밖에 없다.”(『선악의 저편』, 1886)

조주연(미학, 미술비평)